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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금미  작성일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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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고] 정이 고픈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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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이 더 고픈 홀로 사는 노인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4.06.18 05:41

 

김금미 일산 서울내과의원 원장



 

조용하던 진료실 밖이 갑자기 수런거렸다. "원장님, 강 할머니 오셨는데요, 너무 숨차 하세요. 먼저 진료를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가 급히 들어와 사정을 이야기한다. 나는 어서 들어오시도록 했다.

오래전부터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으시는 만성질환 환자다. 할머니 혈압부터 체크했다. 부종이 심했고 울혈로 인해 혈압은 오히려 매우 낮았다. 반면 맥박은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이 상태로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오셨지? 당장 119를 불러야 하나 응급처치부터 해야 하나,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우선 혈압을 회복하기 위해 주사액을 연결하고 산소를 공급했다. 할머니는 최근 며칠 동안 약은 물론 식사도 거의 못했단다. 가슴 사진과 심전도를 찍어 보니 환자의 지병인 심부전증이 악화된 상태였다. 두세 시간이 지나자 그런대로 환자의 상태는 안정돼 갔다. 다행히 큰 병원 응급실에 이송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한숨 돌렸다. 나는 약을 처방해 드렸지만 이 상태로는 보호자 없이 혼자 집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환자 가족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인천 사는 딸이 한 분 있는데요. 전화를 했더니 바빠서 못 온다고 끊어버리네요." 난감해하는 간호사의 대답이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오후 늦게까지 병원에 계셨다. 길고 답답한 하루였다. 해거름이 다 돼 병원 문을 닫을 때가 되자 할머니는 "혼자 집에 갈 수 있다"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셨다. 할머니 집과 방향이 같은 간호사가 부축을 해서 모셨다.

"오늘 눈을 감으면 내일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 또 와서 신세만 지고 가네요." 식사를 잘하시고 약도 꼭 챙겨 드셔야 한다는 당부에 할머니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밤에 갑자기 현기증이라도 나면 옷부터 갈아입으신다는 분이다. 혹여 못 깨어나면 자식들에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보이기 싫어서 평상복 차림으로 주무신다고 한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한결같이 맑고 단정한 분이기에 더욱 연민이 느껴졌다.

병원 뒤쪽에 임대 아파트가 있어서 독거노인이 꽤 많이 거주하신다. 거동이 가능한 노인들은 노인정이나 복지관에 다니고 보건소도 정기적으로 방문하신다. 그러나 그분들이 몸이 아플 때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집계된 국내 독거노인은 120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의 90% 이상은 실제로는 자녀가 있다고 한다. 함께 살기 불편해서, 자식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이민을 가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노인만 혼자 살고 있는 것이다. 환자 상태에 관해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자녀분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그냥 웃으며 입을 닫아버린다.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그 자체를 거절하는 분도 있다.

[ESSAY] 情이 더 고픈 홀로 사는 노인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15년째 같은 자리에서 병원을 지켜온 터라 홀로 사는 노인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깊게 파인 주름, 들리지 않는 귀, 땅에 닿을 듯 굽은 허리에 근근이 병원 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면 참 안쓰럽다. 이분들의 가장 큰 소망은 더 아프지 말고 제발 이대로만 살다가 잠자듯이 가는 것이라고 속내를 풀어놓는다. 혼자 죽는 것보다도 혼자 아픈 것이 더욱 두렵다고들 한다. 자주 오시는 한 할아버지는 진료실을 나설 때마다 "또 와서 미안해요" 하신다. 그 뜻을 알기에 조락(凋落)의 뒷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내 새끼들까지 마른 젖 물려서 키워주신 우리 어머닌데!" 문상차 들른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우는 지인을 보았다. 노인이라서 눈이 조금 덜 보이려니 무심했단다. 구십 노모가 차려준 밥상에서 밥알보다 쌀벌레가 더 많은 것을 보고서야 어머니 눈에 병이 났음을 알았다고 했다. 가슴 아린 일이지만 이 시대를 사는 자식들에게는 너나없이 자유로울 수 없는 사연이다. '조금만 일찍 내원(來院)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경우는 내가 진료 중인 노인 환자 중에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형편인 환자를 대하면 '가진 게 적은 노인일수록 자식 얼굴 보는 횟수가 적다'는, 항간에 회자되는 말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노인 수명이 길어지면서 독거노인 수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일본 노인들은 자기 집을 개방하거나 마을에 마련된 공동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며 풍요로움을 누린다고 한다. 우리도 현재 각처에 분포돼 있는 노인정을 잘 활용하면 독거노인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삶의 질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어느 책에서 읽었듯 홀로 사는 노인은 배가 고픈 것보다 따뜻한 정이 더 고프다.
 

 
김금미 | 일산 서울내과의원 원장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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