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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금미  작성일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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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가는길 (당진 투데이 기고)
(당진 투데이 기고 글) 

필경사 가는 길

 

일산서울내과의원 김금미

 

 

나의 외가는 충청남도 당진이다. 당진군 부곡리는 어머니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모델인 나의 외할아버지(심재영)가 정착하여 농촌 계몽 운동을 하셨던 곳이며, 외할아버지의 숙부인 소설가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1996년에 작고하였고, 지금은 95세이신 외할머니께서 그 집을 지키고 계신다.

 

50년 넘게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던 큰외삼촌 부부가 지난 해 초 미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당진에 내려와 정착하면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처음 두 분이 미국의 안정된 생활과 기반을 모두 내려놓고 한국으로, 그것도 시골 당진으로 내려가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는 서울에 계신 어머니와 형제들이 걱정 반, 고마움 반의 마음으로 큰외삼촌 내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삼촌은 모든 이의 걱정을 뒤로 하고 노령의 할머니를 살갑게 대해드리면서 당진 옛집을 예쁘게 단장하고 상록수 기념관인 필경사와 상록수 기념사업을 잇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어머니와 나를 초대하였다.

 

서울에서 당진으로 가는 길은 한 시간 반도 채 걸리지 않았다. 외가로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서니 아담한 크기의 <심재영 고택(古宅)>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팻말에서 이어지는 오솔길 좌우로 곧은 소나무들이 들어오는 이를 반긴다. 외할머니는 최근 당뇨가 생기고 한 차례의 대퇴골 골절도 겪었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다. 아직도 밭일을 놓지 않는 거친 손과 주름 패인 얼굴에도 따스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외삼촌은 귀국 후 할머니가 15년간 홀로 지켜왔던 외가를 말끔히 정돈하였다. 외할아버지의 사진과 책상들이 모두 정리되어 쉽게 외할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었다. 외숙모는 시골의 주방이 불편할 텐데도 능숙하게 상을 차리고, 외삼촌은 할머니 옆에 앉아 드시기 편하도록 생선을 바르고 고기를 잘라드렸다. 원래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처럼.

 

 

 

아침 식사 후 외삼촌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기 위하여 외가를 나섰다. 깨끗하게 새로 단장된 집 앞 잔디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세워있는 심훈의 시비 <그날이 오면><애향가>앞에 한참을 서서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심훈을 다시 기억했다.

 

 

 

 

 

 

바로 옆 양지바른 곳에 외할아버지를 모신 산소가 있다. 큰 키에 훤칠했던 모습 그대로 외할아버지의 산소도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인물, 여기에 영면하다.’ 라고 적혀있는 짧은 비문이 나의 가슴 깊이 젖어들었다.

 

   

 

 

 

 

1930년 외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할 예정이었지만, 농촌 운동을 하기 위하여 유학을 접고 선대의 논밭이 있던 당진으로 내려가 정착하였다. 그 당시 농촌의 가난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여서, 소작농들은 빚에 쪼들렸고, 보리 고개에는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반사였다. 아이들은 월사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학교에 가지 못하여 한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논밭을 공동 경작회를 구성하여 기증하였고, 못자리 개량, 우수품종 종자의 공동구입 등 농촌 계몽 운동을 하면서 공동 경작회 회원들과 함께 야학을 운영하여 아이들과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일보 기자를 하며 시와 소설을 쓰고 영화를 작업하던 심훈은 조카였던 외할아버지의 권유로 1932년 당진으로 내려와서 외할아버지의 댁 근처에 필경사를 지었다. 필경사(筆耕舍)논밭을 경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심훈은 농촌 계몽운동을 하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에 공감하여 필경사에서 소설 <<상록수>>를 집필하였고, 상록수를 완성한 뒤 36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외할아버지는 1991<부곡인>공동경작회에 대한 글을 기고했는데, 그 글에서 숙부 심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표하였다. 심훈은 술 담배를 매우 사랑하였지만, 그 당시 외할아버지가 공동 경작회 동지들과 함께 농촌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술 담배를 완전히 끊기로 약조를 하였던 터라 항상 우스개로,

내가 술 담배를 너무 좋아하는데 너희들이 술 담배를 안 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나는 누구와 놀아야 하느냐?”

 

하고 말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심훈은 10시가 넘은 시각에 외할아버지를 넌지시 불러낸 뒤 그 당시 매우 귀했던 돼지고기를 구워놓고는,

오늘 많이 늦었고, 아무도 없어 괜찮으니 나와 한 잔만 하자

이렇게 권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그 일을 회상하며 다음에 일어난 일은 상상에 맡기셨다.

 

나는 어렸을 적 방학마다 외가로 놀러가곤 했는데 외할머니의 성이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채 씨가 아닌지 외할아버지께 여쭤본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소설 속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모델은 최용신이라는 여성 농촌운동가로 천곡리(지금의 안산)에서 농촌 운동을 했었고, 소설의 내용처럼 건강을 상하여 일찍 타계했다고 회고했다. 외할아버지와 최용신은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농촌 계몽 활동 소식을 접하고 깊이 감명 받은 심훈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 <<상록수>>를 집필하였다고한다. 외할아버지는 최용신의 사후에 그를 존경하고 기리기 위하여 그가 활동하였던 천곡리를 수차례 방문하였다.

 

필경사 기념관에서는 심훈의 다큐멘터리를 매시간 상영하고 있었다.

 

 

 

 다큐를 보니 그의 시, 소설, 영화 등 모든 작품이 애국심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또한 필경사에는 심훈의 <영원의 미소>, <감옥에서 어머님께>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원고 원본이 보관, 전시되어 있었고 그와 친구들의 사진, 상록수를 집필할 때 사용했다는 책상도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 이외에도 이십 여명의 관광객이 필경사를 방문하여 다큐를 감상하고 소설가 심훈을 기억하는 모습에 나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심훈은 19265월 지은 <나의 강산이여> 라는 시에서,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 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 오똑 솟았다가는 굽이쳐 달리는 그 산줄기/ 네 품에 안겨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라고 우리 강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였다. 이 나라와 흙을 사랑하는 그의 정신은 심훈에서 외할아버지에게로, 또 삼촌으로 이어져 지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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