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김금미 에세이 > 김금미 에세이

 작성자 김금미  작성일 2016.01.04  
 첨부파일


교영이의 졸업식날(경남매일 기고)
교영이의 졸업식날
2015년 03월 23일 (월) 김금미 7618700@kndaily.com
   
▲ 김금미 일산서울내과의원 원장
“엄마는 바쁘니까 오시지 않아도 돼요.”

나는 혼자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일이 있어도 병원 문을 닫는 일이 쉽지 않다. 교영이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어른스럽게 엄마를 안심시키고 학교에 갔다. 하지만 나는 막내딸의 중학교 졸업식이니 하루 병원을 쉬고 참석하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두 팔을 크게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졸업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때 바로 내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한 분이 쓰러진 것이다. 강당이 좁아서 학부모를 위한 의자가 부족했었나보다. 노인은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던 모양이다. 무대에서는 졸업식 마지막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웅성거리며 할머니를 둘러쌌다. 나는 본능적으로 노인 곁으로 가서 상태를 살폈다. 노인을 모시고 졸업식을 보러 온 듯한 젊은 여인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의사에요. 걱정하지 말고 119를 부르세요. 그 때까지 내가 돌봐드릴께요.”

우선 떨고 있는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의식이 혼미했고 맥도 잡히지 않았다. 꽃샘 추위로 강당은 꽤 추웠다. 주위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노인이 편하게 누울 수 있게 깔고 덮어드렸다. 긴박한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오자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크게 하도록 유도(誘導)했다.

환자의 손녀는 교영이반 학생 정은이라고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두 아이가 함께 왔다. 나는 교영이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으면 구급차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것을 확인하고 가겠노라 말해주었다. 교영이는 순순히 돌아갔다. 혼자 보낸 아이가 마음에 걸려 당장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환자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돼 그럴 수가 없었다. 30분 쯤 지났을까, 졸업시즌이라 길이 막혔다며 구급차는 늦게 도착했다.

사색이 돼있던 정은이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떠났다. 그제야 나는 기다리고 있을 교영이에게 갔다.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학교를 떠난 뒤였다.

“교영아, 119가 조금 늦게 왔어.”

교영이는 참았던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교영이 울어? 미안해. 그만 그치고 친구들 찾아보자. 사진 예쁘게 찍어줄게.”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친다.

“친구들은 다 가버렸잖아요. 나는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없었다구요. 엄마는 졸업식장까지 와서 환자를 봐야만 해요?”

교영이는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을 담아주고 싶어서 어려운 발걸음을 했는데 정작 중요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니 이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속에는 혼자 남겨진 사실이 교영이를 서럽게 했던 것 같다. 겨우 달래서 운동장을 다 돌아 남아있던 친구 몇 명을 찾아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퉁퉁 부운 눈에 손으로는 V자를 그리며….

두 모녀는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삼 사과하기도 그렇고 이해하라고 설명하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교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같이 사진을 못 찍은 친구들이 학교 운동장에 다시 모여 사진을 찍자는 연락이다. 금새 환해진 교영이는 교복을 차려입고 나갔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못하고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날 저녁은 나도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이라서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마침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오늘 졸업식장에서 일어난 교영이와의 일을 질문했다.

“정말 곤란했겠네요. 아이가 많이 서운했겠어요. 그 순간의 교영이 눈으로, 교영이의 감정으로 들어가보세요. 그리고나서 대화를 시작해보세요. 그러면 아이의 감정은 벌써 풀리기 시작할 겁니다.”

강사의 조언을 듣고 나니 조금은 힘이 났다.

가족파티를 케이크를 사들고 온 내게 웬 푸딩 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식 후 다시 모였던 친구들과의 자리에 할머니 때문에 사진도 못찍고 빠졌던 정은이도 함께 모였다고 했다. 출근하느라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정은이 아버지가 정은이를 통해 감사의 뜻으로 푸딩을 보내온 것이다. 할머니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정은이를 키워주셨단다. 병원에 누워계신 할머니 걱정을 하는 정은이는 내내 울먹이더라고 했다. 평소에도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정은이 졸업식만은 꼭 보셔야한다고 가까스로 참석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어머니가 하시는 걸 보고 처음으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한 친구의 이 말을 내게 전하며 한껏 밝아진 교영이는 어깨까지 으쓱해보인다.

교영이를 한 뼘 자라게 해준 특별한 졸업식 날이었다.
김금미의 다른기사 보기  
ⓒ 경남매일(http://www.gnmaei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보기 수정하기  답변하기  삭제하기

 별칭    내용  

다음글 : 눈높이 공단검진(의협신문 기고)
이전글 : 필경사 가는길 (당진 투데이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