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김금미 에세이 > 김금미 에세이

 작성자 김금미  작성일 2018.03.29  
 첨부파일


왕따 의사의 진료실 풍경(의협신문 기고)
청진기 왕따전문의사의 진료실 풍경
  • Doctorsnews
  • 승인 2016.10.10 11:31


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 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선생님이 왕따전문의라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곱상한 소년을 앞세우고 진료실에 들어서는 아이 엄마의 첫 인사다.

병원 근처에 중고등학교가 밀집돼 있어서 학생환자가 더러 있다. 주로 기관지염이나 위장병 같은 증상으로 내원하는데 부모 같은 마음이 들어 문진을 하다보면 환자도 마음을 열고 친구나 가족문제를 스스럼없이 상담해온다. 그들과 공감하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왕따 전문'으로 소문이 나 있나보다.

환자는 고1이라고 했다. 작은 체구에 귀여운 얼굴, 항상 잘 웃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아 남자친구들이 시샘을 하는 지경이 왔다. 친구들은 SNS에 비난의 글을 올리기도 하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아이는 결국 불면증과 두통이 심해져 내원한 것이다.


소년은 엷게 웃고 있지만 눈은 슬펐다. 질병에 대한 처방은 했지만 명색이 '왕따전문의'라는데…. 그에게 한마디 건넸다.


"내 인생에서 나에 대해 타인이 하는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만큼 타인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단다. 그 친구들이 네게 하는 나쁜 말은 그냥 심심풀이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란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 어머니께 들어보니 피아노도 잘 치고 너 아주 멋진 사람이던걸. 너도 운동을 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너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하자."


2주 뒤 다시 방문한 아이는 조금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재수생이 병원에 왔다. 굽은 어깨, 초점 잃은 눈, 꾹 다문 입. 아이는 속이 쓰리고 답답하다고 했다. 식도염을 앓고 있었다.


"공부는 잘되니?"
"아니요."
"그럼 뭐 하니?"
"TV 봐요."
"그렇구나. 지금 네가 앓고 있는 속병은 운동부족과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 이 시점에서 공부를 안 할 수는 없겠지. 나하고 세 가지만 약속할까? 첫째, 식사 후 아침 저녁 두 번은 무조건 30분 걷기. 둘째, 계획세우기. 수능 때까지 한 달 계획 일주일 계획, 그리고 오늘과 내일 계획을 세운 쪽지를 책상 위에 붙여 놓는 거야. 이런 계획을 세우고 나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편안해지거든. 다음은 천천히 계획을 실천하는 거야. 국어·수학·영어를 순서대로 공부를 하자. 위장병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지 나한테 와요."


"좋아요. 해볼게요!"
"약속의 의미로 우리 악수나 할까?"

밝은 미소로 벌떡 일어나더니 아이는 허리 굽혀 내 손을 잡았다. 잡은 손에 힘이 느껴졌다.



앳된 여성이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다. 어지럼증에 기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열아홉에 기운이 없다니. 검사 소견은 정상이었다. 


"학생인가요, 직장 다녀요?"
"아니요."
옆에 어머니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지내나요?"
"아무일도 안해요."


잠시 나는 환자를 건네보다 다시 물었다.
"미래의 계획은 있어요?"

대답 대신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딸을 바로보지 못하고 고개를 더욱 숙인다.


"검사결과는 모두 정상이에요.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이 친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안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부모님께 미안하고 괴로워 몸에 이상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어머니가 조용히 끄덕인다. 환자에게는 몇 가지 바른생활 수칙을 지켜올 것을 당부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미래의 계획이 무엇인지 생각해옵시다."


며칠 뒤 방문한 환자는 노래에 대한 꿈을 다시 떠올리고 음악학원에 나가고부터 어지럼증이 나았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생기 도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나는 내 진료실에 다녀가는 청소년들이 반갑다. 전문 상담의는 아니지만 인생 선배 입장에서 그들과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다. 부모 마음으로 조언해주고 싶다.


퇴근하면 집에서 막내에게 더욱 진심을 다해 이런저런 말을 한다. 나의 조언에 막내는 "엄마, 어제 했던 말이에요."

아, 막내 상담은 내 친구에게 부탁해볼까.

 


목록보기 수정하기  답변하기  삭제하기

 별칭    내용  

이전글 : 눈높이 공단검진(의협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