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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금미  작성일 20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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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달력

                                어머니의 달력


                                                                                                                                                                                                               김 금 미

어머니에겐 매일의 일을 달력에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나 어렸을 적, 어머니는 우리 4형제의 매일의 일을 기록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거의 모든 행사에 적극 참여하셨다. 34일 개학, 52일 운동회, 91일 학예회 등, 달력에 기록한 행사에는 모두 우리 형제와 함께 하셨다. 우리 초등학교의 학예회에 엄마들과 하는 연극에서 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얼굴, 가냘픈 몸매의 어머니는 곰 세마리의 엄마 역할을 맡기도 했다. 달력에는 우리의 공부 스케줄을 모두 잡고 거실의 네모난 철제 식탁에서 네 형제의 공부를 가르치셨다.



아버지의 외벌이에 연년생 네 형제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간 첫 시험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점심시간,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교무실 선생님들 책상위에는 눈에 익은 어머니의 불고기 요리가 놓여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불고기를 만들어 양손에 가득 들고 버스로 학교에 와서 선생님들을 대접한 것이다. “금미야 어머니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시구나.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려라.” 작은 돈으로 어머니는 가장 깊은 감사의 뜻을 선생님들께 보여드렸다. 그날 집에 돌아가 달력을 보니 어머니의 달력에는 불고기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 네 형제는 장성하여 어머니께 10명의 손자 손녀를 안겨드렸다. 어머니는 다시 바빠지셨다. 어머니는 달력에 10명의 손자 손녀들의 공부 스케줄을 모두 잡으셨다. ‘월요일 은진 과학’, ‘화요일 교중 한글나라’, ‘수요일 교진 책읽기, 어머니는 10명의 손자 손녀의 한글을 모두 떼게 해주셨고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손자 손녀들은 모두 잘 커주었고, 어머니의 달력은 항상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제 어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기셨다. 누구보다 바쁘게 사셨지만, 담낭염 수술, 뇌혈관 박리, 어지러움 증 등을 겪으면서 부쩍 기력이 없어지고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 근처에 사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댁에 들러 어머니 상태를 살핀다. 어머니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환자이다. 약을 신경 써서 조절하고 영양제를 놔드리지만 좀처럼 전신상태가 좋아지지를 않는다.



며칠 전 어머니는 어지러움이 심해져서 신경과에서 뇌혈관 촬영을 하기로 예약하였다. 나는 퇴근 후 어머니께 들러 어머니께 뇌혈관 촬영이 언제냐 여쭤보았다. 어머니는 천천히 일어나 어머니의 달력을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의 달력에는 51일 영양제, 52일 혈압 100/80. 53일 신경과 예약, 510일 뇌혈관 촬영 등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어머니의 달력은 이제 어머니의 병원일지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달력에는 더 이상 아이들 공부도, 모임약속도 없었다.



어머니가 다시 기운이 날 만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고민 끝에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재미있는 것에 신경을 쓸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돌보실 때 가장 행복하셨으니 이제 대학생이 된 손자 손녀에게 하루 한마디씩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달력에 쓰시면 어떨까요?’ 하고 권했다. 솔깃한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만, 어머니는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이 나야지.’ 하고 힘없이 답하신다. 어머니의 달력이 손녀 손자에게 보내는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 차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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